고이즈미式 '극장정치'로 일본 사로잡다

한대협 0 1,223 2017.07.04 13:41
[고이케의 도쿄도의회 선거 압승 비결 들여다보니]

기성 정당서 계파 정치하는 대신 앵커 경험 살려 대중에 직접 호소

- 정곡 찌르는 쉬운 말도 화제
과거 화장 짙다고 공격 당하자 "이래서 日여자가 힘들다" 받아쳐… 여성 유권자 민심 단숨에 장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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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즈미 前 총리(왼쪽), 고이케 도쿄도지사.



3일 오전8시 43분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도쿄 나가타초 총리 관저에 출근했다. 그가 이끄는 자민당은 전날 도쿄도의회 선거에서 57석에서 23석으로 의석이 반토막 났다. 아베 총리는 "패인이 뭐라고 보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집권한 지 5년이 되서 느슨해진 거 아니냐는 비판이 있다. (유권자의) 호된 질타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깊이 반성하겠다"고 말한 뒤 집무실로 올라갔다.

이번 선거에서 자민당은 1955년 창당 이래 최악의 참패를 했다. 도쿄도의회 선거 패배가 정권 교체의 신호탄이 된 1993년 선거(44석)와 2009년 선거(38석)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반면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도지사는 127석 중 79석을 거머쥐는 압승을 했다. 이날 고이케 지사는 산뜻한 민트색 정장을 입고 기자들 앞에 나와 "'낡은 도의회를 새롭게 바꾸자'는 도민들의 기대 덕분에 이겼다"며 "시민의 대표라는 책임감을 갖고, 도정에 힘쓰겠다"고 했다.

마이니치신문 등 일본 언론은 "아베 총리 재집권 후 5년간 계속된 '아베 1강' 구도가 요동치고 있다"고 보도했다. 고이케 지사가 인기 있는 도지사 수준을 넘어 '아베 총리의 대항마'로 체급을 끌어올렸다는 분석이다.

그의 정치 이력과 스타일도 새삼 부각됐다. 고이케 지사는 카이로대학 졸업 후 민영방송 앵커로 일하다 40세 때(1992년) 신생정당인 일본신당에 들어갔다. 이듬해 일본신당은 '낡은 정치를 개혁하자'고 호소해 도쿄도의회 선거(20석·16%)와 총선(35석·7%)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국민적 인기를 바탕으로 자민당·공산당을 뺀 다른 모든 정당을 묶어 연립 정권을 창출하고, 헌정 사상 첫 정권 교체에 성공했다.

하지만 일본신당은 1년만에 정권을 뺏기고 사분오열했다. 이후 고이케 지사는 9년간 다섯 차례 당적을 바꾼 끝에 2002년 자민당에 들어갔다. 그때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가 그의 잠재력을 알아보고 각료로 발탁해 집권 후반 3년간 환경상을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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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케가 하는 정치가 이때 배운 '고이즈미식 극장정치'라는 분석이 나온다. 거대한 기성정당 내부에서 계파 정치를 통해 세력을 키우기보다, 카메라 앞에서 쉬운 말로 대중에게 직접 승부수를 던진다는 뜻이다. 작년 7월 도쿄도지사 선거 당시 자민당 연사로 나선 이시하라 신타로(85) 전 도쿄도지사가 "화장 짙은 중년 여자에게 도정을 못 맡긴다"고 하자, 다음 날 "오늘은 (화장을) 엷게 하고 나왔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일본 여자가 힘들다"는 말로 되받아쳐 여성 유권자들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반면 "미디어를 노련하게 이용하는 포퓰리스트"라는 비판도 있다.

'고이케유리코 정치학원'이라는 강좌를 열어 도쿄도의회 선거에 출마할 정치 신인을 발굴하는 전략도 통했다. 한 달 만에 전국에서 4000명이 지원했고, 거기서 추린 50명이 이번 선거에 나가 1명만 빼고 전부 당선됐다. 대다수가 회사원·변호사·회계사 등으로 일하던 '정치 경험 제로'의 일반인이다.

고이케 지사는 만만찮은 야심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젊은 날 이혼한 뒤 혼자 사는 고이케 지사의 애견 이름이 '소짱'이다. 총리를 뜻하는 일본어 '소리(總理)'에 사람 이름에 붙이는 애칭 '짱'을 붙인 것으로, 그의 궁극적인 목표가 총리라는 걸 시사하는 대목이다.

다만, 고이케 지사가 내년 총선 때도 비슷한 성과를 낼지는 미지수이다. 도민퍼스트회는 아직 전국 조직이 없는 지역 정당이라, 기성정당의 도움 없이 전국 세력화가 쉽지 않다는 분석도 많다. 고이케 지사도 이날 "전국 조직화 할 거냐"는 기자들 질문에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다"라고 일단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도 "'도민퍼스트'를 '국민퍼스트'로 바꿔서 그걸 기본으로 놓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국민들에게도 좋은 일"이라는 말로 전국적 세몰이에 나설 여지를 남겼다.



[도쿄=김수혜 특파원 goodluck@chosun.com][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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